SK하이닉스 스토리: 위기 속의 돌파 (액션)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SK하이닉스가 선택한 것은 멈춤이 아니라 질주였다. 20나노 공정 개발을 앞당긴 127일간의 숨 막히는 레이스.
2008년 11월, 이천 공장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5분 뒤 긴급 임원회의입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메모리칩 가격은 연일 폭락했다. 어제 256MB DDR2 칩 가격이 또 30% 떨어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중압감이 휘몰아쳤다. CFO가 스크린을 켰다. 빨간 그래프가 급강하하고 있었다.
“현금 유동성이 3개월 안에 바닥납니다. 공장 가동률을 60%로 낮추거나…” 그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면 문을 닫거나.” 누군가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생산본부장 김 상무가 벌떡 일어섰다.
“지금 멈추면 끝입니다. 삼성이 그걸 노리고 있어요.”
“미쳤어? 재고가 산더미인데 더 만들자고?” 재무팀장이 소리쳤다.
김 상무는 흔들리지 않았다. “2년 뒤를 보십시오. 스마트폰 시대가 옵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습니다. 메모리 수요는 폭발할 겁니다. 지금 살아남는 자가 그 시장을 먹습니다.”
“2년? 3개월도 못 버틸 판에?”
“그래서…” 김 상무가 USB를 꽂았다. 새 화면이 떴다. “20나노 공정 개발을 당깁니다. 6개월 안에.”
회의실이 술렁였다. 원래 일정은 18개월이었다. 불가능한 목표였다.
“미세공정 전쟁에서 이기면 원가가 40% 떨어집니다. 삼성보다 먼저 양산하면 게임이 뒤집힙니다.”
CEO가 30초간 침묵했다. 그의 손이 책상을 쳤다.
“합니다. 전 연구인력을 투입하십시오.”
그날부터 이천과 청주 R&D센터는 불야성이 되었다. 엔지니어들은 교대 근무 체계로 돌입했다. 노광 장비 앞에서 밤을 새우고, 웨이퍼 수율 데이터를 분석하고, 실패한 샘플을 다시 구웠다.
127일째 되던 날 새벽 4시, 클린룸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20나노 DRAM 시제품이 안정성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수율 87%! 양산 가능합니다!”
2009년 6월,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20나노 DDR3 양산을 발표했다. 삼성보다 4개월 빨랐다.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단가 경쟁력을 확보한 SK하이닉스는 글로벌 PC 제조사들과 대규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2010년, 아이패드가 출시되며 메모리 수요가 폭발했다. 김 상무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위기 속에서 멈추지 않고 달린 회사는 살아남았고, 경쟁자들을 제쳤다.
이천 공장 옥상에서 김 상무는 24시간 돌아가는 생산라인을 내려다봤다. 불빛이 반짝였다. 멈추지 않는 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