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캘리포니아 로스가토스의 넷플릭스 본사. 리드 헤이스팅스는 창밖의 여름 햇살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작성을 마친 발표문이 들려 있었다.
“DVD 사업과 스트리밍 사업을 분리합니다.”
단 한 줄의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15년간 쌓아온 모든 것을 건 도박이 담겨 있었다. 1997년, 블록버스터 비디오 가게에서 연체료를 물며 느꼈던 그 굴욕감이 넷플릭스의 시작이었다. 우편으로 DVD를 빌려주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시작해, 2007년 스트리밍이라는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고객들은 이해할 겁니다.” CFO 데이비드 웰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DVD는 과거고, 스트리밍이 미래라는 걸요.”
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가에는 피로의 흔적이 역력했다. “이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고객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거죠.”
발표는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불러왔다. 가격은 60% 인상되었고, DVD 서비스는 ‘퀵스터’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분리되었다. 고객들의 분노는 순식간에 소셜 미디어를 뒤덮었다.
“배신자.” “오만한 CEO.” “넷플릭스는 끝났다.”
매일 아침 리드가 마주하는 것은 수십만 건의 해지 요청이었다. 주가는 폭락했다. 80만 명의 고객이 떠났다. 직원들의 눈빛에서 불안이 번졌고, 이사회는 그의 사임을 압박했다.
9월의 어느 밤, 리드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창업 동료 마크 랜돌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크, 내가… 내가 모든 걸 망쳤어.”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15년을 쌓은 신뢰를, 단 몇 주 만에 무너뜨렸어.”
전화기 너머로 긴 침묵이 흘렀다.
“리드, 자네는 항상 5년 후, 10년 후를 봤어. 하지만 고객들은 오늘을 살아. 그걸 잊었던 거야.”
마크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리드는 전략가였지만, 인간의 감정을 계산하지 못했다. 혁신을 외쳤지만,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손을 놓쳐버렸다.
10월,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퀵스터 분리 계획은 전면 철회되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긴 사과문을 올렸다.
“저는 오만했습니다. 고객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리드는 처음으로 편히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항복이었다. 겸손을 배운 대가는 혹독했다. 회사 가치는 절반으로 줄었고, 업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2012년 봄, 리드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오리지널 시리즈에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데이터만 믿지 않았다. 창작자들의 열정을, 시청자들의 갈망을 믿었다.
2013년 2월,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개되었다. 전 세계가 환호했다. 넷플릭스는 더 이상 DVD 회사가 아니었다. 스토리를 만드는 회사였다.
리드는 창가에 서서 로스가토스의 석양을 바라보았다. 퀵스터의 악몽은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아픔이 그를 더 나은 리더로 만들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의 책상 위에는 고객들에게서 받은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당신이 사과한 용기에 다시 구독합니다”라는 짧은 문장이었다. 리드는 그 편지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 오만했던 여름을, 무너졌던 가을을, 그리고 다시 일어선 겨울을 잊지 않기 위해.
넷플릭스는 그렇게, 상처를 딛고 전설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