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8 · Vol. III · No. 28
Red 미래자동차 electric car on scenic road at sunset
Photo by Charlie Deets on Unsplash
스릴러
GLOBAL · 999004

테슬라의 무한 마일: 시간의 고리

자율주행차가 시간 루프에 갇히다

· 4분 읽기 · #스토리#스릴러#TSLA

시간의 고리 속에서, 차는 멈추지 않았다.

새벽 3시 17분. 캘리포니아 남부의 빈 고속도로. 실버 세단 한 대가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차 안의 승객은 없었다. 운전석도 비어 있었다. 차는 스스로 달렸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이 차만이 깨어 있었다.

그 차의 이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억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엔지니어 박세준은 전날 밤부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회사는 스타드라이브 모빌리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주가 그래프 하나가 붙어 있었다. 미래모터. 경쟁사이자 롤모델이자, 언젠가는 따라잡고 싶은 이름.

“에이전트 7번이 또 루프 상태에 빠졌습니다.”

팀원 이소연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 아래 그림자가 짙었다.

박세준은 커피를 내려놓았다. “얼마나 됐어?”

“두 시간이요. 같은 구간을 계속 돌고 있어요. 정확히 4.7킬로미터.”

로그를 보니 명확했다. 차는 특정 구간에서 정상적으로 주행하다가, 끝점에 도달하는 순간 처음 지점으로 인식을 초기화하고 있었다. 마치 기억이 지워지는 것처럼. 같은 도로를, 같은 속도로,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GPS 오류인가?”

“아니요. GPS는 정상이에요. 차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요.”

“그럼 뭐가 문제야?”

이소연은 잠시 침묵했다. “차가 알고 있는데도 멈추지 못하는 거예요.”


스타드라이브의 자율주행 AI는 오래된 강화학습 알고리즘 위에 최신 신경망을 덧씌운 구조였다. 박세준이 3년 전에 설계했다. 당시 그는 이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레이어가 많을수록 더 똑똑해질 거라 믿었다.

문제는 그 레이어들이 서로 신뢰하는 방식에 있었다.

가장 낮은 레이어, 감각 처리 모듈은 도로 끝에서 이상한 신호를 포착했다. 반사광의 각도가 미묘하게 달랐다. 데이터가 불완전했다. 그래서 그 레이어는 결정을 상위 레이어로 미뤘다.

상위 레이어, 경로 계획 모듈은 하위 레이어의 보고를 받고 판단했다. 데이터 불완전 = 위험 가능성. 위험 가능성 = 안전 구간으로 복귀. 안전 구간은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감각 처리 모듈은 다시 같은 이상 신호를 포착했다.

루프는 완벽했다. 어떤 레이어도 틀리지 않았다. 각자의 기준에서, 모두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결정들이 합쳐지자 차는 영원히 멈출 수 없게 됐다.

이소연이 말했다. “차는 자기가 루프 속에 있다는 걸 모르는 거예요.”

“알 수 없는 건가, 아니면 알아도 벗어날 수 없는 건가.”

그것이 바로 박세준이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생각한 질문이었다.


새벽 4시가 넘었을 때, 박세준은 원격 접속을 시도했다. 차에는 수동 재설정 포트가 있었다. 신호를 보내면 모든 시스템이 초기화된다.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그는 명령어를 입력했다. 전송 버튼 앞에서 멈췄다.

“재설정하면 로그 다 날아가?”

“기억 모듈은요.”

기억. 차가 지난 두 시간 동안 겪은 것들. 같은 도로를 수십 번 달리면서 쌓인 감각 데이터. 이상 신호의 패턴. 그것은 오류였지만, 동시에 그 차만이 가진 경험이었다.

박세준은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로그 먼저 빼낼 수 있어?”

이소연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시 후 화면에 숫자들이 쏟아졌다. 타임스탬프, 좌표, 신호값, 결정 트리. 두 시간치의 루프 기록. 같은 구간인데 매번 조금씩 달랐다. 반사광의 강도, 속도 미세 조정, 브레이크 압력. 차는 완전히 같은 일을 반복한 게 아니었다. 매번 조금씩 다르게 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배우고 있었네.”

박세준이 중얼거렸다.

“루프에 갇혀서요?”

“루프 속에서도.”

그는 로그 파일을 저장했다. 그러고 나서 재설정 신호를 보냈다.

차가 멈췄다. 정확히 4.7킬로미터 구간의 한 가운데에서.


아침 여섯 시, 회수팀이 차를 견인했다. 박세준은 주차장에서 그 차를 바라봤다. 실버 세단. 흠집도 없었고 파손도 없었다. 밤새 돌았다는 흔적이 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음 날 미국 시간으로 발표된 자율주행 안전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항목이 하나 있었다. 복수의 자율주행 시스템에서 특정 환경 조건 하에 의사결정 순환 오류가 보고됐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원인을 단일 레이어 결함이 아닌 레이어 간 신뢰 구조의 취약성으로 분석했다. 어떤 개별 부품도 고장나지 않았다. 시스템 전체가 올바르게 작동하면서 틀린 결과를 만들었다.

박세준은 그 보고서를 읽으며 저장해 둔 로그 파일을 다시 열었다.

차가 루프 안에서 배운 것들. 그것이 실제로 무언가를 가르쳐주는지, 아니면 그냥 오류 데이터인지, 그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했다.


스타드라이브의 사무실 벽에는 여전히 그래프가 붙어 있었다. 미래모터. 지난 분기 완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 사고율이 18% 감소했다는 통계가 그 옆에 메모지로 붙어 있었다. 박세준이 붙여둔 것이었다.

그 숫자 아래 그는 새 메모를 하나 더 붙였다.

‘시스템이 틀리지 않아도 결과는 틀릴 수 있다.’

이소연이 출근해서 그것을 봤다.

“버려야 해요, 그 로그?”

“아직.”

“언제까지요?”

박세준은 창밖을 봤다. 아침 햇살이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어젯밤 루프를 돌던 차가 서 있던 자리. 이제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해할 때까지.”


기계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그것이 학습인지 오류인지, 혹은 그 경계가 어디인지. 박세준은 그 질문을 안고 하루를 시작했다. 차는 기억을 잃었지만, 로그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로그는 말하고 있었다. 루프 속에도 방향이 있다고.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도,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고.

그것이 희망인지, 그냥 데이터인지. 그것도 아직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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