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거래의 청산
변동성 폭증과 헤징 비용으로 수십 년의 마진이 사라진다. 원자재 거래사는 구조적 변화 앞에서 경험의 무용함을 깨달으며, 아날로그 시대 종말을 인식한다.
강재호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글로벌금속거래소가 열리기 세 시간 전. 창밖으로 서울 여의도 불빛이 번져 있었고, 그는 책상 앞에 앉아 화면을 켰다. 커피 한 모금, 니켈 선물 호가 확인. 이십삼 년 동안 반복된 동작이었다.
그의 공식 직함은 원자재 트레이더였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일은 시간차를 파는 것이었다. 산지 가격과 수요처 가격 사이의 미세한 틈새, 그 몇 백 달러를 쪼개어 수수료로 바꾸는 일. 그것은 감각의 직업이었다. 데이터가 아니라 냄새로 하는 거래였다.
화면에는 구리 선물이 떠 있었다. 3개월 물이 전날 대비 4.7퍼센트 급락해 있었다.
그는 숫자를 세 번 읽었다. 이상하지 않았다. 요즘은 이게 일상이었다.
2024년 이후 원자재 시장의 내재 변동성은 만성적 수준으로 올라섰다. 미중 관세 분쟁의 반복, 그린에너지 전환에 따른 수요 구조 교란, 여기에 고빈도 알고리즘 거래가 더해지며 가격은 하루 사이 5퍼센트 오르내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강재호의 헤징 비용은 2023년 대비 세 배가 됐다. 마진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문제는 어느 날 하나가 아니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는 것처럼, 어느 순간을 짚기 어려운 변화였다.
작년 10월, 그는 구리 포지션에 헤지를 걸었다. 교과서적인 판단이었다. 사흘 후 알고리즘 세력이 반대 방향으로 포지션을 한꺼번에 청산했고, 그의 헤지는 손실에 손실을 더했다. 방어가 공격이 된 것이다. 그 선물은 그날 오후 런던 마감 직전 2.1퍼센트 반등했고, 강재호는 양쪽에서 얻어맞았다.
전략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것은 이미 전략이 아니라 도박의 반대편에 서는 것, 그러니까 확률도 없이 지는 도박이었다.
그는 회사 메신저를 열었다. 싱가포르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이번 달 구리 마진 다시 확인해보셨어요? 헤지 비용 빼면 사실상 제로입니다.”
강재호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창문 쪽을 바라봤다. 여의도 빌딩들이 막 동이 트는 빛을 받아 창유리에 반사되고 있었다.
이십삼 년이라는 세월을 그는 냄새로 버텼다. 선물 만기일이 다가오면 무게가 달라지는 분위기, 산지 파업 소문이 돌 때 거래창 호가 간격이 벌어지는 패턴, 런던 트레이더들이 점심 이후 늘어지는 시간대에 생기는 유동성 공백. 그 모든 것이 스물다섯 살부터 쌓아온 자산이었다.
그런데 알고리즘은 냄새를 맡지 않았다. 분위기를 읽지 않았다. 그것은 감각 없이 속도로만 작동했고, 속도 앞에서는 경험이 의미를 잃었다.
오전 여섯 시가 되었다.
강재호는 화면을 꺼지게 두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다시 그 차트를 펼쳤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잠깐 멈췄다.
포지션을 열지는 않았다. 닫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숫자들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봤다. 새벽 여의도는 조용했고, 런던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어떤 마감은 요란하지 않다. 서류 한 장 없이, 퇴직식 없이, 그냥 어느 아침에 자신이 더 이상 이 시장의 언어를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방식으로 온다.
창밖 불빛이 점점 옅어졌다. 해가 뜨고 있었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