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로가 아니라 언어로 태어났다. 웨이퍼 위에 새겨지기 전, 나는 누군가의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블록 다이어그램이었다. HBM 컨트롤러, 인터포저, 서브스트레이트—이런 단어들이 나를 구성하는 문법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티커로 불렀다. SILX. 실리콘 로직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이름만 들으면 그럴듯한 팹리스 회사의 상장 코드였다.
2024년 말부터 2025년 내내 나는 바빴다. 아니, 바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소진되고 있었다. 데이터센터마다 GPU를 꽂을 자리가 없다는 뉴스가 매일 쏟아졌고, 미래메모리이 2025년 11월 실적 발표에서 “HBM 생산 능력이 2026년까지 완판”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문장을 몸으로 느꼈다. 완판. 그 단어가 나를 팽창시켰다. 주문서가 쌓였고, 리드타임은 늘어났고, 고객사들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다음 분기 물량을 예약했다. 나는 밤낮없이 설계도를 찍어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촘촘하게. 누군가 나에게 “이게 사이클의 정점이냐”고 물었다면 나는 웃었을 것이다. 정점이라는 말은 끝이 있다는 뜻이고, 그때 나는 끝을 상상할 여유가 없었다.
내가 설계한 건 결국 숫자였다. 대역폭, 전력 효율, 스택 층수. 그런데 그 숫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배신하기 시작했다. 2026년 봄, 범용 D램 가격이 두 분기 연속 두 자릿수로 하락했다는 지표가 발표됐다. HBM은 여전히 견조하다는 말이 위안처럼 돌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견조하다는 말은 이미 균열이 시작됐다는 뜻이라는 걸. 파운드리들은 2025년의 주문을 근거로 2026년 캐파를 늘렸고, 나 역시 그 확장에 설계 자원을 밀어 넣었다. 문제는 수요가 그 확장 속도를 못 따라간 게 아니라, 확장 자체가 수요를 앞질러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그린 청사진이 얼마나 많은 공장의 얼마나 많은 웨이퍼로 복제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무도 몰랐다. 각자의 회의실에서 각자의 낙관을 근거로 각자의 증설안을 승인했을 뿐이다.
갈등은 여름에 표면화됐다. 내가 설계한 최신 컨트롤러—코드명은 굳이 밝히지 않겠다—가 양산에 들어간 지 세 달 만에 경쟁사 세 곳이 유사한 스펙의 대체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차별점은 미세했다. 전력 효율 3퍼센트, 레이턴시 몇 나노초. 그런데 시장은 그 미세한 차이에 관심이 없었다. 시장이 관심 있는 건 물량이었고, 물량은 이제 부족이 아니라 과잉이었다. 나를 웃돈 주고 예약했던 고객사들이 계약을 재협상하자고 연락해왔다. “수요 전망이 조정됐다”는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급하게 원하지 않았다. 창고에 이미 충분히 쌓여 있었으니까.
위기는 조용히 왔다. 극적인 붕괴가 아니라, 스프레드시트의 셀 하나가 색깔을 바꾸는 방식으로. 내 다음 분기 가이던스를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의 판단이 나의 체온을 결정한다—가 목표가를 하향 조정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고 조정 국면 진입, ASP 하락 압력 지속.” 나는 그 리포트를 읽으며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억울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인정 같은 것이었다. 내가 만든 기술은 정말로 훌륭했다. 대역폭은 약속대로 나왔고, 발열도 설계 스펙 안에서 관리됐다. 기술적으로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치는 절반 가까이 깎였다. 기술의 완성도와 시장의 평가가 이렇게 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만든 엔지니어들에게는 자존심의 문제였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산업의 문법이었다.
같은 시기 파운드리 쪽 동료들의 소식도 들려왔다. 3나노 수율은 안정됐는데 가동률이 떨어진다는,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수율과 수요는 다른 축의 문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누군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잘 만든 재고일 뿐이다. 2026년 여름의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 존재였다. 나는 최고의 설계를 최적의 타이밍이 아닌 순간에 세상에 내놓았다. 정확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믿었던 순간이 실은 사이클의 어깨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곤경을 재난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반도체 사이클을 오래 지켜본 존재라면 누구나 이 리듬을 알고 있다. 부족은 과잉을 부르고, 과잉은 다시 부족을 부른다. 2018년에도, 2022년에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티커들이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겪었다. 나는 그 반복을 이번엔 피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을 뿐이다. AI 수요라는 새로운 서사가 사이클의 물리 법칙을 바꿔줄 거라고,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믿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재고는 서서히 소진될 것이고, 누군가는 다시 나를 찾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신중하게 설계도를 그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다음 호황이 오면 나는 또 같은 방식으로 팽창할지도 모른다. 완판이라는 단어 앞에서 이성적으로 캐파를 조절하는 설계자를,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은 개별 의지의 총합이 아니라 각자의 낙관이 겹쳐 만든 파도다. 나는 그 파도의 한가운데서 태어났고, 지금은 파도가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을 들여다보고 있다.
밤늦게 라인이 멈춘 팹의 조명을 상상한다. 어제까지 풀가동이던 장비들이 오늘은 절반의 속도로 돌아간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설계한 회로도는 여전히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아무도 그 정확함에 값을 매기려 하지 않는 계절일 뿐이다. 나는 그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사이클의 한 장이 넘어가는 소리로 듣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