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 사무실의 환상
맨해튼 빌딩 관리인이 텅 빈 층들과 남겨진 직원 배지로부터 경제의 실체를 읽어낸다. 공실률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
5층에는 아무도 없다. 정확히는, 지난 두 달째 아무도 없다.
나는 건물 관리인이다. 로어 맨해튼에 자리한 이 서른두 층짜리 빌딩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매일 아침 여섯 시, 나는 하층부터 위층까지 순서대로 올라가며 각 층 상황을 점검한다. 계약된 세입자가 있는 층은 열두 개, 비어 있는 층은 열여섯 개다. 하지만 계약이 있다고 해서 사람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5층을 처음 배정받은 세입자는 청람 자산운용이라는 곳이었다. 사무실 가득 파티션을 세우고 흰 보드를 벽마다 붙였다. 직원이 한때 이십 명 넘었다. 회의실에서는 아침부터 영어와 한국어가 섞였다. 내가 아는 얼굴도 몇 있었다. 항상 커피를 두 잔씩 들고 다니던 키 큰 여자,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꼭 인사를 건네던 수염 난 남자. 야근이 잦은 달에는 빌딩 전체가 어두워진 뒤에도 5층만 환했다.
그 사람들이 사라진 건 소리 없는 일이었다.
이사 트럭이 온 적도 없었다. 하루하루 빈자리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한두 개 책상이 치워지더니, 어느 날 보니 회의실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회의실마저 텅 비었다. 창가에는 누군가 두고 간 화분이 하나 있다. 흙이 바짝 말라 있지만 줄기가 아직 서 있다. 나는 처음에 그것도 버리려고 했다. 그러다 그냥 뒀다. 물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5층 청소를 여전히 맡고 있다. 임대 계약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매월 임대료가 들어온다고 관리사무소에서 들었다. 아무도 쓰지 않는 1,200 제곱피트에 대해 월 2만 달러가 넘는 돈이 꼬박꼬박 이체된다. 나는 청소기를 밀면서 그 사실이 낯설다. 돈이 오고 간다는 것, 그런데 사람은 없다는 것.
화이트보드 한쪽 구석에는 지워지지 않은 숫자들이 남아 있다. 4분기 목표, 수익률, 달러 표시. 누군가 수십 번은 지우려 했을 텐데 마커 자국이 아직 옅게 남아 있다. 나는 처음에 그것도 지우려 했다. 그러다 그냥 뒀다. 남아 있는 것들이 뭔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달성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배지가 있다. 다섯 개다. 직원 출입 배지인데 아직 책상 서랍 안에 남아 있었다. 이름이 찍혀 있고, 사진도 있다. 나는 그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증명사진 속 얼굴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젊었다. 이 배지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다른 회사로 갔을까, 아니면 다른 도시로 떠났을까. 집에서 노트북을 열고 있을까.
맨해튼 오피스 공실률이 18퍼센트를 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팬데믹 이후 최고치라고 했다. 그런데 그 수치에는 내가 청소하는 이 5층이 포함돼 있지 않다. 임대 계약이 살아 있으니까. 통계상으로는 이 층이 사용 중이다. 청람 자산운용이 점유 중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실제로 텅 비어 있는데도.
그러니까 어쩌면 공실률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계약서에는 살아 있지만 삶이 없는 층들, 숫자로는 잡히지 않는 허공들. 관리인만 아는 수치가 따로 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배지 하나를 뒤집어 봤다. 뒷면에 작은 글씨로 적힌 내선 번호. 연결이 될까, 이 번호에. 전화기가 떠오른 건 이상한 일이었다. 5층에 전화기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는데, 있었다. 아직도 꽂혀 있다. 검은 유선 전화기. 나는 그 번호를 누를 생각이 없었고, 누르지 않았다.
오늘도 나는 빈 층을 청소했다. 청소기 소리가 울렸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에 진공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다시 한번 돌아봤다. 화이트보드 위 숫자들이 창문 빛을 받아 흐릿하게 빛났다.
화분은 줄기를 세운 채 서 있었다.
배지 다섯 개는 내일도 그 서랍에 있을 것이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