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8 · Vol. III · No. 28
Two people working in a laboratory with equipment.
Photo by Navy Medicine on Unsplash
멜로
GLOBAL

치료를 좇는 사람

생명을 살릴 항암 치료제를 최종 임상까지 이끄는 바이오테크 연구자가 속도와 엄밀함 사이의 도덕적 긴장과 마주한다.

· 3분 읽기 · #스토리#멜로

치료를 찾는 사람


새벽 세 시, 임상시험 데이터 센터의 복도에는 형광등 하나가 주기적으로 깜박였다. 박민준은 그 빛의 리듬을 숫자처럼 세며 걸었다. 손에는 종이 한 장. 3상 임상시험 중간 분석 결과. 그의 눈은 두 번, 세 번 같은 줄을 읽었다.

생존 기간 중앙값: 대조군 11.2개월, 투여군 18.7개월.

그는 숨을 참았다. 이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7.5개월이었다. 누군가에게 그 7.5개월은 딸의 졸업식이고, 아들의 첫걸음이고, 봄날 창가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민준이 SGNE의 연구소에 합류한 건 12년 전이었다. 당시 SeulGene은 렌알리돌로 다발성 골수종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었고, 민준은 그 파장의 변두리에서 일하는 면역조절 전문 연구원이었다. 그는 크게 빛나는 이름이 아니었다. 논문 인용 횟수도 중간쯤이었고, 학회 발표보다 실험실 벤치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참을성이 있었다. 과학에는 그 편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가 SG-40-L이라는 분자를 처음 만진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동료가 병가를 내면서 넘긴 프로젝트였다. 당시 이 물질은 2상에서 기대 이하의 반응률을 보이며 내부 우선순위 목록 하단에 묶여 있었다. 민준은 투여 용량 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골수 미세환경의 단백질 분해 속도를 과소평가했다고. 그는 6개월 동안 혼자 재분석했고, 신임 임상팀장에게 같은 말을 다섯 번 설명했다.

여섯 번째에야 그들은 들었다.


3상 시험이 시작된 해, 그의 어머니가 진단받았다. 재발성·불응성 다발성 골수종. 6차 치료까지 소진한 상태였다. 담당 의사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했다.

민준은 이해충돌 규정 때문에 어머니의 시험 등록에 개입할 수 없었다. 어머니도 등록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는 일부러 어머니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대신 그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출근해서 데이터 파일을 열었다. 익명화된 환자 번호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어디에도 어머니는 없었지만, 그는 마치 있는 것처럼 일했다.


이사회가 처음으로 압박을 넣은 것은 중간 분석 결과가 나오기 두 달 전이었다.

2019년 1월, Myung-Bristol이 SeulGene을 740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기업 통합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파이프라인 정리가 시작됐다. 민준의 프로그램은 빠른 성과를 요구받았다.

CFO 출신의 전략 부사장 래리 텔퍼드는 회의실에서 직접적으로 말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이후 FDA 협상 창이 열려 있습니다. 반응률 데이터만으로 가속 승인을 신청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전체 생존 기간까지 기다리면 2년을 더 날립니다.”

민준은 테이블 위에 손을 얹었다. 조용히, 뭔가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반응률과 생존 기간 사이의 상관이 이 약에서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가속 승인을 받고 나중에 확증 실패가 나오면, 우리는 그 2년을 아낀 게 아니라 환자를 두 번 실망시키는 겁니다.”

텔퍼드는 슬라이드를 넘겼다. 논의는 계속됐다.


이후 석 달 동안 민준은 세 종류의 시간을 동시에 살았다.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와의 통화 시간, 병원 대기실에서 어머니 옆에 앉아 있는 시간, 그리고 텔퍼드와의 이메일이 오가는 시간.

어머니는 점점 말이 줄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네가 만드는 약은 언제 나와?”

민준은 한참 창밖을 봤다.

“빨리 내놓으려면 지금 낼 수 있어요. 근데 그러면 완전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지 마라.”

그 말이 회의실보다 더 선명하게 들렸다.


중간 분석 결과가 나온 날,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조기 종료를 권고했다. 통계적 경계를 명확히 넘은 유효성이었다. 조기 종료는 시험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뜻했다. 결과가 워낙 유의미해서 위약군을 더 이상 시험에 붙잡아 두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생존 기간 중앙값 18.7개월 대 11.2개월. 사망 위험 비율 0.61.

민준은 보고서를 출력해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냐고 물었다.


FDA 신약 신청서가 제출된 날, 사무실에서는 샴페인을 열었다. 민준은 한 잔 받아 들고 창밖을 봤다. 조지아의 9월 하늘은 높고 투명했다.

텔퍼드가 옆으로 다가왔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전체 생존 데이터가 없었으면 심사관들이 훨씬 까다롭게 굴었을 겁니다.”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것은 익명화된 환자 번호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그 숫자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어머니는 그해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신청서 접수일로부터 47일 후였다.


이듬해 봄, FDA는 SG-40-L에 승인을 내렸다. 민준은 회의실 TV 화면에서 그 소식을 봤다. 시험 등록 당시 반응률 기준으로는 탈락했을 환자들이 생존 데이터 덕분에 결국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내용도 함께였다.

누군가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데이터가 옳았습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말이었다.

복도 형광등은 그날도 같은 리듬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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