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7 · Vol. III · No. 37
Strategic pla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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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GLOBAL

금융 혁신의 밤, 길을 잃다

핀테크 스타트업 테크핀을 이끌던 이준호 대표가 신용평가 알고리즘 오류로 인한 대규모 고객 손실 속에서 자신의 혁신적 신념이 과연 옳았는지 극단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 3분 읽기 · #스토리#스릴러

밤 열한 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사무실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이준호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쓰러져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내맡긴 채, 눈만 화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숫자들이 흘렀다. 빨간색. 또 빨간색. 끝없는 빨간색의 강.

TFIN — 테크핀의 주가는 오늘 하루 만에 18.3퍼센트 폭락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3,200억 원이 사라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준호를 짓누르는 건 주가가 아니었다. 주가는 숫자였다. 숫자는 다시 올라올 수 있다. 그가 두려운 건 다른 것이었다.

“대표님, 보도자료 초안 나왔습니다.”

마케팅 팀장 윤서연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이준호는 받아들었지만 읽지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있었다. 테헤란로의 가로등이 빗속에 번져 있었다.

“제목이 뭐야.”

“‘알고리즘 오류, 즉각 수정 착수’ 입니다.”

“오류.”

이준호는 그 단어를 씹듯 되뇌었다. 오류. 오류라고 하면 단순하게 들린다. 실수. 버그. 고치면 끝나는 것.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건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테크핀의 신용평가 알고리즘 ‘ClearScore v2’는 지난 14개월간 3만 8천 명의 대출 신청자를 심사했다. 그중 상당수가 실제 신용도보다 낮은 등급을 받아 대출이 거절됐다. 어떤 사람은 집을 살 기회를 잃었다. 어떤 사람은 사업 자금을 구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왜 거절당했는지 몰랐다. 알고리즘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리즘의 방식이었다.

2019년,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글로벌 카드사의 신용평가 알고리즘이 동일한 재무 상태임에도 여성에게 낮은 한도를 배정한다는 사실이 외부 조사로 드러났다. 당시 소동은 컸다. 그러나 업계는 곧 잊었다. 알고리즘은 더 정교해졌고, 더 불투명해졌다. 이준호도 그 시절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자신의 모델은 다르다고 믿었다.

믿었다.

“우리 알고리즘은 편견이 없어. 데이터만 본다고.”

3년 전, 첫 투자 유치 발표 자리에서 이준호가 한 말이었다. 그 자리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수도 있었다. 기자들은 메모했다. 그는 영웅 같은 기분이었다. 낡은 은행 시스템을 뒤집고, 더 공정한 금융을 만든다는 사명. 그 사명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대표님.”

윤서연이 다시 불렀다.

이준호는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도록.

“피해자 수 최종 집계 나왔어?”

“네. 3만 8천 4백 12명입니다. 이 중 1,200여 명은 이의 신청 기록이 있고요.”

1,200여 명. 그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시스템에 대고 호소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준호의 알고리즘이 그들에게 침묵으로 답했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개발팀 소속 허재원 수석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어떤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결의라기엔 무겁고, 체념이라기엔 아직 뜨거운 무언가.

“대표님, 제가 말씀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이준호는 그를 바라봤다.

“ClearScore v2가 처음 배포됐을 때부터 데이터셋에 편향이 있었습니다. 훈련 데이터 자체가 2010년부터 2018년 사이의 기록인데, 당시 금융 접근성이 낮았던 계층 — 특히 비정규직과 자영업자 — 의 상환 패턴이 과소 반영됐습니다. 저희가 편견 없다고 믿었던 숫자 안에, 이미 편견이 있었던 겁니다.”

방 안에 오래 침묵이 고였다.

이준호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빗줄기가 유리를 두드렸다. 가늘고 집요했다.

혁신. 그는 그 단어를 얼마나 많이 입에 올렸나. 강연마다, 인터뷰마다, 투자자 미팅마다. 혁신은 선이라고, 속도는 덕목이라고, 데이터는 공정하다고. 그 믿음들이 지금 이 방 안에서 하나씩 습기를 먹은 종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나는 잘못된 질문을 했던 거야.”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혼잣말 같았지만 허재원은 듣고 있었다.

“우리가 계속 물은 건 ‘얼마나 정확한가’였어. ‘누구에게 정확한가’는 안 물었어.”

허재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서연도 마찬가지였다. 그 침묵은 동의였고, 동시에 위로이기도 했다. 그들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 같은 믿음으로,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어왔다.

이준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랍에서 낡은 노트를 꺼냈다. 회사를 창업하던 해에 썼던 것이었다. 표지가 닳아 있었다. 그는 첫 페이지를 폈다. 자신의 필체로, 젊고 거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금융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 문장은 여전히 옳았다. 그는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 적힌 수십 페이지의 계획들 — 알고리즘과 모델과 수익 구조들 — 은 이제 다시 써야 했다. 처음부터가 아니라, 더 깊은 곳에서부터.

밖에서 빗소리가 조금 잦아들었다. 아니면 그가 익숙해진 건지도 몰랐다.

이준호는 노트를 덮지 않은 채로 다시 모니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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